어느덧 민준이가 2.5살이 되었다. 시커멓고 가득한 머리카락에 까무잡잡한 피부와 부리부리한 인상으로 쌔근쌔근 보드라운 신생아 느낌보다는 뭔가 상남자(?) 같은 강렬한 인상을 자랑하며 내 품에 쏙! 들어오던 아기가 이제는 안아주기에도 버거울 만큼 컸다. 이제는 아무리 한 품에 안으려고 해도 머리든 발이든 쑥 튀어나와 버린다.
민준이는 한 번 말이 트인 후에는 무서운 속도로 말을 익히기 시작했다. 매일 깜짝 놀랄 만큼의 말들을 쏟아냈는데 워낙 말하는 걸 좋아해서 그런진 몰라도 이제는 거의 웬만한 자신의 감정과 원하는 바를 말로 표현한다. "오늘~ 체육 선생님 오셔서~ 친구들은 다 같이 했는데~ 민준이는~ 무서워서 구경만 했어~"와 라던지 "민준이는~ 노란 꽃 보는 게 좋아~", "지금~ 큰 트럭~ 한 번 보고~ 저~~~~ 기~~ 지하철 역까지~~ 걸어가고 집에 가자~!" 등등 이게 두 살 반 아기가 말하는 게 맞나?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말을 잘 표현해 내니 다행이면서도 신기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자신의 감정을 잘 설명해서 아이와 소통하는 게 훨씬 수월해졌다.
남편과 나는 민준이가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잘 표현하는 것에 좀 더 집중이 된 편이었다. 대부분의 부모들이라면 당연히 그럴 테지만 지금 이 아이가 어떤 마음이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니 말이다. 그리고 아이가 우리의 상황이나 마음을 알고 있을까? 라던지 그런 걸 궁금해할지에 대해서는 그리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런 예상치 못한 부분을 민준이가 확! 치고 들어오는 일들이 종종 생겨났다. 아직은 '아기'라고 불러야 하는 이 작은 존재가 우리의 상황을 걱정해 주다니! 와 같은 그런 감동을 말이다. 내가 베란다에서 빨랫감을 정리하고 있을 때 베란다 출입문을 열어둔 적이 있었다.
민준이: (한참 거실에서 흥얼거리며 놀다가) "엄마~? 어딨 어~?" (베란다 쪽으로 다다다 뛰어와서) 엄마 뭐 해~?
나: 엄마 지금 빨래 정리하고 있어.
민준이: 빨래???
나: 응~ 민준이 옷이랑 양말이랑 수건이랑 모두 세탁기에 넣어서 깨끗하게 해달라고 할 거야.
민준이: (바닥을 보더니) 엄마 여기 지지해. (우리 집은 1층이라 베란다에 항상 먼지와 모래가 잘 들어온다)
나: 바닥? 아~ 여기는 베란다 바닥인데 먼지도 있고 그래.
민준이: 먼지? (쭈그려 앉아서 바닥을 만지려 한다)
나: 민준아~ 먼지는 지지한 거야. 그래서 만지지 않아요. 먼지가 많으면 에취 재채기도 하고 콧물도 나와.
민준이: 에취!! (재채기 흉내)
나: 그러니까 민준이는 여기 말고 저~기 거실로 가서 놀고 있어야겠지?
민준이: 응~ 근데~ (고개를 반쯤 기울이며 눈은 동그랗게) 엄마는 괜찮아??
나: (잘못 들었나?) 응??
민준이: 엄마는~ 괜찮아???
나: (빵 터지면서) 하하하 엄마는 괜찮아~! 엄마 걱정해 준 거야?? 아유 착해라 우리 애기!
이 날 예상치 못했던 민준이의 '배려'가 정말 사랑스럽고 예쁘고 대견하고 고맙기도 하고, 그 짧은 순간에 오만가지 감정이 다 들었다. 이 아기는 지금 다른 사람을 생각해 줄 만큼 마음도 많이 자랐구나, 그런 생각에 뭉클했다. 어떤 사람들이야 뭐 그런 거 가지고 호들갑 떤다 할 수도 있겠으나 아마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느끼는 그런 순간들 중 하나가 아닐까. 이때쯤부터 민준이는 엄마를 '심쿵'하게 만드는 여러 멘트들을 날리기 시작했다. 당연히 민준이가 일부러 의도를 가지고 하는 것들은 아니기 때문에 더 크게 감동하는 그런 말들이다.
민준이: (엄마 팔과 다리를 만지작거리며 손 빨고 누워있다)
나: 민준아, 엄마 팔이랑 다리 만지는 게 좋아?
민준이: 응, 나는 엄마 팔 하고 다리 좋아.
나: 민준아, 근데 엄마 다리 안 예뻐~~ 그만 만져.
민준이: (엎드린 자세로 고개를 들어 날 빤히 쳐다보면서) 나한테는~ 좀~ 이뻐!
나: (!!!!!!!!!!)
고작 2.5살 아기 입에서 나온 저 말은 정말 심쿵 그 자체였다. 어떻게 이렇게 예쁜 말을 할 수 있을까? 순간 뭐라 반응을 할지 몰라서 잠시 멈칫하고 민준이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 작은 아기가 가져다준 큰 행복을 어떤 말로 해도 다 표현이 잘 안 되는 그런 기분. 이 얘기를 남편과 가족에게 하는 걸 옆에서 들었던 민준이는 요즘 이따금씩 "엄마 예뻐~~~!!!!" 하고 강요하듯(?) 큰소리친다. 자신이 이렇게 말했을 때 엄마가 무척 기뻐했고 그 얘기를 들은 가족들의 반응도 하하 호호하며 자신을 예뻐한다는 걸 안 민준이가 그렇게 얘기하는 거일 테다. 많은 이들이 육아의 어려움과 고단함을 얘기하며 아이 낳는 것을 꺼려하는 요즘, 아이의 존재가 인생을 얼마나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드는지 목놓아 외치고 싶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 내 인생 통틀어 언제가 가장 반짝반짝 빛나는 시기였는지 돌이켜봤을 때 주저 없이 지금을 꼽을 거라고 확신하는 만큼, 요즘 하루하루는 모든 순간을 기록해두고 싶을 만큼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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