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머리로 공부 잘하는 아이를 원하는 건 우리나라의 오래된 역사일 것이다. 배움을 통해 자신의 덕을 양성하고 (수기, 修己) 이를 바탕으로 관직에 나아가 세상을 다스리는 데 힘쓴다(치인, 治人)는 유교의 정신을 온전하게 실천하고자 했던 500여 년의 조선 시대부터 볼 수 있었던 모습이지 않은가. '사람은 배워야 산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현대 사회에서는 사회적, 물질적 성공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필수 불가결한 조건으로 여겨지면서 교육은 예나 지금이나 너무나도 중요하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의 사교육비 지출은 아이들의 숫자는 확연이 줄어들고 있음에도 날로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요즘은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다양한 교육용 자료도 시중에 많이 소개되고 있는데, 전자 기기가 발달하면서 영상 콘텐츠들이 눈에 많이 띈다. 특히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앱으로 출시되는 다양한 교육 콘텐츠들이 '우리 아기의 뇌 발달'에 관심이 지대하게 많은 부모들의 욕구와 맞물리면서 날로 다양해지는 모습이다. 꼭 교육 목적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일상생활에서 스마트폰은 사람과 자석만치 붙어있는 필수 아이템이다 보니 부모 옆에서 이를 지켜보는 영유아들도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을 접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주제는 요즘 부모들의 큰 고민이자 걱정거리기도 하다. 안 보여줄 수도 없고, 보여주자니 걱정되고... 그러다가 외출해서 보채고 우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꺼내기도 하고 밥 안 먹는 아이를 설득하기 위해 보여주게 되는 걸 시작으로 아기와 스마트폰의 동행이 시작되는 것 같다.
우리 부부는 아이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서로 약속한 게 있었는데 '만 3세 이전까지는 절대로 영상에 노출시키지 말자'는 것이었다. 처음 아이를 키운다는 걱정과 부담감 때문에 임신때부터 다양한 육아 자료를 찾아보았는데 그중 영상 노출에 관한 전문가들의 의견들은 하나 같이 모두 'NO'를 외치는 것이었다. 이유는 다양했는데 두뇌와 사회성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 언어 발달 지연, 공격적 행동 증가, 주의력 결핍 등의 문제들을 야기하는 주요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무시무시한 경고를 듣고 나서는 절대로 영상을 보여주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막상 아기를 키우면서 사진과 동영상도 찍어야 되고 부모님들과 영상 통화도 하다보니 아기는 자연스럽게 조금씩이라도 스마트폰이라는 존재를 인식하게 되었다.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하는 물체가 신기해서 손을 뻗고 아주 자연스럽게 터치하면서 화면을 이리저리 옮기고 바꾸는데 그만하라고 손에서 뺏자 잉잉거리면서 울고 보채고 짜증 내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래도 아기일 때는 몸집도 작고 힘도 약하니까 쉽게 제어할 수가 있었는데 조금 더 크니 이 짜증과 보챔의 스케일이 달라지면서 몹시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돌이 좀 지난 무렵부터는 "이건 민준이 장난감이 아니야. 갖고 놀지 않아요!!!" 하고 단호하게 눈앞에서 치우고 우리 또한 핸드폰은 절대 꺼내지 않았다. TV는 당연히 매일 꺼놔서 민준이는 우리 집 TV가 켜진 걸 여태껏 본 적이 없다. 남편이나 나나 드라마나 예능을 꼭 챙겨보는 편도 아니어서 크게 불편함도 없고, 어차피 민준이가 잠든 후 유튜브나 OTT 앱으로 충분히 시청할 수 있기 때문에 생활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
이런 패턴이 완전히 자리잡으니 우리도 크게 어색하지 않고 아이도 TV를 보겠다거나 핸드폰을 달라는 소리도 안 한다. 누군가가 보기에는 너무 많은 걸 포기하는 게 아니냐, 불편할 것 같다는 시선도 있을 수 있으나 그것 또한 우리 가족은 이미 익숙해진 상황이라 힘들다는 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 아이가 외출해서 떼쓰고 울고 보채는 게 힘들다면 굳이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는 편이다. 아직 집중력이 길지 않고 자기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이 완전히 발달하지 못한 아기라면 당연히 그럴 수 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 반드시 컨트롤 해야겠다, 그런 마음은 내려놓기로 했다. 아기와의 추억 만들기는 어디 특별한 곳이 아니더라도 동네에서도, 일상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일상의 지루함을 아이와 잘 보내는 것이 육아'라는 내가 즐겨보는 어느 소아과 원장님의 유투브 채널에서 나온 따뜻한 말에 힘을 얻고 뭔가 아기에게 새롭고 다양한 경험과 장소를 방문하는 기회를 제공해야 된다는 강박 관념도 가지지 않는다. 아기 스스로 감정과 충동을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
외출해서도 크게 예민해하지 않고 어느 정도 양육자가 컨트롤하면서 다닐 수 있는 아기라면 어디든 갈 수 있을거다. 하지만 우리 아기처럼 예민한데 호기심과 에너지가 넘쳐흘러 외출할 때 여러 돌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면 어떤 방식이 아이와 부모에게 가장 좋을지 충분히 고민하고 아이와 맞춰가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다. 우리 부부는 그걸 '집에서 멀지 않은 적당한 거리(1시간 내외)', '아이가 불편해하지 않는 적당한 장소(시끄러운 실내는 제외)', '길지 않은 외출 시간(점심과 낮잠 시간을 꼭 지키는 일정)' 정도로 잡고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택을 한다. 아이가 커감에 따라 그 범위를 조금씩 넓혀가는 중이며 그 과정에서 절대 영상 콘텐츠를 도구로 사용하지 않는 노력은 지금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 선택에 후회하지 않는다.
만 3세 이전의 아기에게 두뇌와 감성이 가장 잘 발달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충분한 애정을 담은 상호작용'이라고 한다. 그런데 스마트폰이나 영상이 등장하면 그러한 상호작용은 감소할 수 밖에 없다. 아무리 부모가 옆에서 함께 이야기하고 지도하면서 시청한다 할지라도 아이의 눈은 부모 얼굴이 아닌 액정 화면에 고정되어 있고 부모도 아이의 얼굴보다 화면을 더 많이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차 안에서 이동할 때도 민준이와 끊임없이 창 밖의 풍경을 보고 관찰하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어른에게 특별하지 않은 사소한 것도 아기에게는 신기하고 재밌는 주제다. 밤에 잠들기 전에 침대에서도 그 날 했던 일과 무엇을 보았고 어떤 것을 했고 그때 기분이 어땠는지 얘기를 한다. 그러면 아이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되고 충분한 상호 작용이 이루어지니 그보다 더 좋을 수가 없는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아이는 스펀지처럼 언어를 흡수하고 자기 것으로 익힌다. 말을 트게 한다고, 두뇌 발달을 시킨다고 상호 작용이 결여된 영상 시청을 선택하는 것이 과연 최선의 방법일지 의문이 든다.
앞으로 민준이가 커가면서 영상 노출에 대한 고민이 더 깊어지겠지만 그래도 지금의 마음을 잊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한다. 아이가 부모인 우리와 얘기하고 노는 것보다 스마트폰과 TV를 더 좋아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왠지 아이가 우리에게서 일찌감치 멀어진 느낌일 것 같아 조금 울적해진다. 우리 아이가 엄마 아빠랑 놀고 책 읽는 게 더 재밌어요 하는 말이 나올 수 있도록 늘 노력하는 부모가 되어야지 라는 다짐을 해본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밤늦게 이렇게 전자 기기를 만지며 잠시 자유시간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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