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퍽이나 예민한 편이다. 보고 듣고 느끼는 것 모두 그러해서 사는 게 좀 피곤하다. 내가 예민한 성향이라는 건 나이 30이 훌쩍 넘어서야 차차 알게 되었고 그전에는 매 순간 겪는 불편함을 온몸으로 감수하며 몹시 불편하게 살았던 거다. 내가 왜 그렇게 날카롭고 화가 많았었는지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는 안다. 나는 말 한마디에서 느껴지는 어감과 그 사람의 비언어적인 표현까지 모두 신경 쓰고 순간적인 부분도 캐치하는 편이다. 그걸 꼭 말로 하지 않지만 정말 답답하거나 필요하면 가까운 소수에게만 털어놓고 보통은 나의 예민함이 너무 발현되었던 거지 하고 넘기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예민함도 장단점이 있는데, 일단 단점으로는 조직 생활에서 함께 하는 사람들의 성향에 따라 좋음과 나쁨이 극명하게 갈린다는 거다. 그래서 민준이를 낳기 직전의 1년 2개월이 끔찍하게 힘들었다. 그때 나의 성향이 어떤지 깊이 고민하게 되면서 내가 예민하다는 걸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내 예민함은 육아 휴직을 들어가서 집에서 안정을 찾음과 동시에 잦아들었는데 민준이가 태어나면서 다시 발동했다. 아이 낳고 1년 정도는 예민하지 않던 사람도 예민함이 하늘을 찌르는 시기에 나는 정말 최고치를 찍었던 것이다. 문제는 민준이도 참으로 예민한 아기였던 점이다. 조리원에서까지는 사실 아이와 붙어있지 않았기에 그저 먹성 좋고 잘 자는 아기인 줄 알았는데 집에 돌아와 보니 아니었다. 초나노 수준급의 등센서로 팔이 떨어지겠다 싶을 때까지 안고 재워야 했고 안고 있다가도 살짝 움직이기만 하면 "애앵~~~"하고 울면서 깨기 일쑤였다. 오죽하면 8년 차 산후조리 도우미 이모님이 '정말 재우기 힘든 아가다'라는 힘겨운 한 마디를 하셨을까 싶다. 민준이가 3개월쯤 될 때까지 아기띠를 하루에 14시간 이상 하는 날이 지속되어서 어깨와 목이 뭉치고 육아 피로도가 엄청나게 상승했다.
결국 이렇게는 절대 못 키우겠다는 마음에 민준이가 생후 백일이 지나면서 독하게 마음먹고 '수면 교육'을 시작했다. 1차적인 목표는 누워서 잠들 수 있게 하는 것이었고 분리 수면까지는 엄두도 못 냈다. 일단 누워 자기만 해도 고맙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대략 일주일 정도 지나니 슬슬 누워서 자기 시작했다. 그때는 '아 이제 됐다'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수시로 깨고 울고 잠자리를 너무 가려서 어디 잠깐 산책 나가는 것도 조마조마한 날이 시작됐다. 본인 침대에서 내가 같이 누워 있는 것이 아니면 잠들지를 못하는 우리 아기... 유모차를 태우고 산책 가는 때는 잠시 잠이 들었다가 중간에 깨면 집에 와서까지도 울음이 그치지 않았다. 어디 아기 데리고 외출을 하거나 마트를 간다는 것도 우리 부부에게는 아주 굳은 결심이 필요한 어려운 일이었으니 그 해 여름은 거의 꼼짝없이 민준이와 둘이 집에 갇혀 있었다. 돌이켜보면 (아직 그리 오래 키우지 않았으나) 그때가 민준이를 키우면서 제일 힘들었던 시기였던 거 같다. 시댁과 친정 놀러 가서도 낮잠을 잘 못 잤기 때문에 그때는 부모님들께 집으로 오시라고 할 정도였으니...
너무 힘들기는 했으나 한편으로는 나도 그 예민함이 얼마나 불편한지 잘 알기에 안타까웠다. 우는 것과 옹알이로만 의사 표현이 가능한 이 작은 아기가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까 싶어서. 그리고 긴장감, 불안감도 함께 커지기 때문에 민준이의 예민함을 어떻게 잘 포용해 줄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 타고난 예민함은 줄어들거나 없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스스로 조절하고 그로 인해 유발되는 긴장감을 낮추는 연습을 충분히 해야 성인이 됐을 때 보다 수월하게 살아갈 수 있을 텐데 라는 생각도 있었다. 마음은 그런데 방법을 모르니 참 답답했다. 아무리 육아 정보가 많다고 한들 그런 건 어디 얘기하는 사람도 없기에 혼자 발 동동 구르는 그런 느낌.
우선 잠자리에 대한 예민함은 부딪치는 수밖에 없었다. 외출은 낮잠 시간에 걸리지 않은 때로 조정하고 혹여 피할 수 없다면 애착 인형으로 삼을만한 거나 아기 베개와 이불을 갖고 다니며 최대한 안정감을 주려고 노력했다. 그래도 민준이는 잘 때마다 엄청나게 울다 지쳐 잠들었다. 그리고 SNS에서 많이 올라오는 아기 데리고 놀러 가는 정보, 여행지 이런 거에 관심을 끊었다. 불편해서 울고 불고 밥도 안 먹는데 여행을 간다 한들 아기한테 즐거운 기억이나 느낌조차 남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준이와는 여름휴가 때 집에서 한 시간 정도 거리의 근교로 1박 2일 정도 두 번 다녀온 것 외에는 장거리 여행을 간 적은 아직 없다.
그리고 민준이는 소리에 몹시 예민한 아기라서 조용하고 안정감 있는 자장가가 효과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소리 자체를 불편하게 받아들이게 되면 성격까지 나빠질 수 있겠다 싶었고,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풍부하게 잘 들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으니 노래를 자주 들려주면 분명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거라고 믿었다. 뭐든 내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나 또한 소리에 예민해서 큰 소리에 쉽게 놀라고 기분도 몹시 불쾌해지는데 그런 긴장감을 노래를 들으면서 많이 낮추기 때문이다. 돌이 지나서 민준이가 말을 시작하고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엄마가 자장가 불러줄까?"하고 물으면 "응! 기찻길 옆 오막살이!"라고 선곡까지 하게 되었다.
소리에 예민한 아기의 또 다른 장점은 말을 배우는데도 수월하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원래 말이라는 건 소리를 듣고 잘 따라 하는 것이니까. 외국어를 배울 때도 그 언어의 발음, 억양 등을 잘 캐치하고 최대한 잘 따라 한다면 듣기와 말하기 영역에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으니 말이다. 민준이의 경우, 말을 하기 시작한 시기는 돌이 조금 지나고 했으니 보통 다른 남자 아기들과 비슷했지만 한 번 시작하니 초고속으로 습득했다. 지금 두 돌 반인 민준이와 얘기할 때는 대략 네 살 정도의 아이와 대화화는 느낌이 들 정도이니 가족과 주변인들 모두 신기해하고 있다. 단순히 민준이가 영특하다기보다는 소리의 예민함이 장점으로 잘 구현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이유로는 우리 부부는 민준이가 아주 어린 아기일 때부터도 특별히 '유아어'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오랜 시간 아이 돌보미 일을 하시며 정기적으로 육아 교육을 받으시는 시어머니의 말씀이 큰 도움이 되었는데, 아무리 어린 아기라고 해도 다 알아듣고 이해하기 때문에 늘 말 조심하고 잘 얘기해줘야 한다는 조언을 주셨었다. 민준이를 키우면서 직접 느낀 바, 그 말씀은 정말 옳았다. 다만 문장은 최대한 간결하고 정확하게 얘기해 주었는데 (대명사 '이것', '그것' 등을 사용하지 않고) 아직 어린 아기들한테 길고 긴 문장은 잘 들어오지 않고 집중력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어쨌든 아무리 어리더라도 아기들은 다 이해한다는 가정 하에 늘 대화를 시도하면 나중에 아이가 말문이 트였을 때 큰 거름이 되는 것 같다. 또한 말문이 트이는 시기가 다소 늦다고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민준이가 자주 다니는 소아과의 원장님께서도 말문 트이는 시기는 아이마다 차이가 있는데 그거 자체가 문제 되지 않다고 강조하셨던 부분이다. (실제로 손녀가 2살 넘어서 말을 시작했는데 엄청나게 빨리 습득해서 놀랐다고 하심)
예민함을 낮추기 위해 하루 종일 노래를 틀어주었어서 그런지 노래와 춤도 좋아해서 요즘은 혼자 따라 부르다가 신나서 방방 뛰고 빙글빙글 돌면서 춤도 추고 흥이 넘친다. 그런 모습을 보면 저 어린 아기도 자신의 예민함을 스스로 조절하면서 열심히 크고 있다는 생각에 조금 마음이 짠하다. 조금 더 편해지기까지 저 어린 아기 혼자 얼마나 무수한 불편함, 긴장감과 싸웠을까, 그리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래도 나보다는 민준이가 조금 더 노련하게, 그리고 현명하게 잘 헤쳐나갈 거라고 믿는다. 아직도 소리가 왕왕 울리는 대형마트, 쇼핑몰 같은 곳에서는 불편해하면서 손 빠는 모습을 보이고 에어바운서나 소리가 크게 나는 체육 활동도 무섭다고 참여하지 않는다는 어린이집 선생님의 말씀을 전해 듣긴 한다. 그렇지만 이것도 천천히 기다리며 응원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이 아이가 그 벽을 혼자 넘어서는 날이 올 거라 믿는다. 그동안 우리는 든든하게 옆에 있어주면 되지 않을까?
나의 예민함은 '넌 참 유별나다'라고 지적받는 단점이었는데 우리 아이의 예민함은 그냥 그 아이의 여러 특성 중 하나로, 그리고 나아가서는 장점으로 생각하게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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