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태어나면 반드시 찾아야 하는 중요한 정보 중 하나는 바로 아기가 다닐 '소아과'일 것이다. 은근히 소아과가 많은 것 같으면서도 믿고 다닐만한 곳을 찾는 게 쉽지는 않아서 한동안 '소아과 유목민'이 될 수도 있다. 민준이와 우리 가족은 대략 1년 남짓 괜찮은 곳을 찾아다니다가 겨우 한 곳에 정착했는데 그 과정이 참 험난했다. 지금도 처음 아기를 키우는 엄마 아빠들이 틈틈이 정보를 찾아 헤맬 텐데 개인적인 경험에 의거해서 드리고 싶은 한 마디는 '가까운 (오래된) 동네 소아과가 최고'라는 거다.
처음에는 여기저기 많이 검색해서 추천이 많은 곳 중에서도 평일 야간 진료와 휴일 진료가 가능한 곳으로 다녔다. 보통 아기가 열이 나면 평일 진료 시간이 지난 저녁이나 밤일 때가 많고 또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갑자기 열이 오를 때도 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한 것이었다. 물론 비상 상황에 대비해서 집 근처에 언제나 찾아갈 수 있는 병원이 어디 있는지 알아두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다만 그런 소아과는 보통 다수의 소아과 전문의가 로테이션 진료를 보기 때문에 아무 때나 간다고 늘 같은 선생님께 진료를 받을 수가 없다. 그냥 간다면 갈 때마다 매번 다른 선생님께 다른 기준의 진료와 늘 달라지는 약처방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민준이는 이런 혼란 때문인지 진료의 연속성이 떨어져서 감기도 쉬이 낫지 않았다. (물론 너무 어린 아기는 면역력이 아직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그럴 수 있으나 정말 고생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병원은 대기 시간이 무척이나 길다. 기본 1시간 생각하고 가야 되는데 아픈 아기들이 내뿜는 감기 바이러스가 우글거리는 곳에서 1시간 대기는 정말이지... 다시 생각해 보시라고 하고 싶다.
민준이가 돌 무렵이 될 때까지는 차로 약 15분 거리의 소아과 전문 병원에 다녔다. 제법 큰 규모라 입원실도 있고 평일 야간, 공휴일 진료도 가능하며 전문의만 약 6~7명이 있는 정말 큰 곳이다. 진료하는 선생님은 매일 3명 내외이긴 한데 한 선생님께 꾸준히 진료받기 위해 미리 선생님들의 진료일을 파악하고 요일에 맞춰 가곤 했다. 문제는 그 동네 맘카페에서도 괜찮다고 추천하는 선생님께 진료를 받던 때였다. 청진에서 자꾸 폐렴으로 의심되는 소리가 들리니 X-ray를 찍어야 된다고 강행을 하시는 거다. 그 순간 정말 난감했다. 아직 돌도 안 된 아기한테 이걸 시도해도 되는 건지, 아니면 더 큰 문제를 막기 위해 찍는 것에 동의를 해야 되는 건지 너무 어려웠다. 웬만한 일에 무던하게 대응하는 남편도 그때만큼은 정말 어려워했다. X-ray 결과 미세한 폐렴이 의심된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당시 영유아 폐렴이 대유행해서 전국의 소아과 병동에 입원실이 없어서 난리였고, 아기가 제법 잘 버티니 집에서 최대한 잘 요양을 해보자고 하셨다. 그런데 그때부터 항생제 지옥이 시작되었다. 우리 부부는 전문 의료인이 아니니 함부로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항생제 때문에 계속 물설사를 반복하고 힘들어하는 아기를 보니 정말 스트레스가 쌓였다. 이게 정말 아기를 낫게 하기 위한 치료의 과정인 건지 단순히 혹사시키는 것이 아닌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그렇다고 진료 시 자세한 설명을 듣기도 어려웠는데 규모가 큰 병원인만큼 언제나 대기 인원이 가득 차서 최소 30분~1시간 대기가 기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진료는 1분 남짓, 딱히 뭘 물어봐도 이해되지 않는 두루뭉술한 대답만 돌아왔다. 제일 문제가 되었던 것은 다른 이비인후과에 가서 진료를 받아와서 약을 잘 안 먹였다고 아주 불쾌해하면서 어린 학생 꾸짖듯 화를 내는 진료 태도였다. 오죽하면 다른 병원을 찾아갔을까. 두세 달 하루도 쉬지 않고 약 먹고 진료를 받는데 전혀 차도는 없고 매일 "이번에도 만만치 않겠어요"라는 말만 되풀이하면서 항생제 남용으로 아기는 물설사만 지속하고 있는데 말이다. 차도 없는 진료 상황에 대한 설명 없이 자기 말고 다른 의사한테 갔다는 걸로 화를 내는 모습을 보면서 '아, 내가 우리 아기를 힘들게만 했구나 다른 곳을 가야겠다'라고 결심했고 그날로 그곳에 발길을 끊었다. 그리고 동네 소아과를 찾아다니기 시작해서 겨우겨우 지금 다니는 한 곳을 찾아냈다. 여기도 간혹 추천하는 사람들의 글이 있었는데 규모가 아주 작고 기기도 좀 오래돼서 그 외관만 봐서는 사람들이 바로 찾아가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래도 그 주변 동네 사람들의 추천이 꽤 있었고 오랜 시간 한 자리에서 계속 진료를 본다는 것과 소아과 전문의가 진료한다는 것을 믿어보자는 마음으로 가봤는데 탁월한 선택이었다. 주양육자가 이해하기 쉽고 간결하게 설명해 주시는 것은 물론 평소 아기의 성향이나 약 처방받았을 시의 반응이라던지 다양한 부분을 미리 파악하고서는 신중하게 약 처방을 해주시는 모습에 안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평소 생활 수칙, 이유식 등 신경 써야 할 부분도 설명을 해주시니 아픈 아기를 돌보는 일에 큰 도움이 되었다. 아무리 진료 대기가 있다 한들 충분히 설명해 주시고 양육자의 말도 경청해 주시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있을까?
영유아 검진이란 것도 아기가 개월 수에 맞게 잘 크고 있는지를 체크하는 것으로 기본적으로 소아과 전문의들이 판단하는 분야다. 그러니 아기가 다니는 소아과에서 받는 게 제일 좋고 특별히 더 큰 병원, 새로운 병원을 간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안 좋은 경우도 있는데 민준이의 2차 영유아 검진이 그러했다. 대충 설명하고 5분 만에 끝나버린 최악의 영유아 검진이었다. 그 소아과는 표시해 놓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절대 가지 않는데, 그 병원에 달린 댓글과 후기를 보니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종종 있었던 것 같다. 영유아 검진에서는 소아과 전문의의 설명과 분석이 정말 중요하므로 충분한 상담이 가능한 곳으로 가야 하는데, 그렇다면 자주 아기를 진찰하고 봐온 소아과 선생님이 최고의 검진의가 되는 것이다. 지금 민준이와 다니는 소아과 선생님은 평소 진료를 볼 때에도 거의 영유아 검진에 가까울 만큼의 상담을 해주시기 때문에 많은 도움이 된다. 어제도 민준이의 어린이집 하원 후 진료를 다녀왔는데, 이제는 민준이도 선생님이 친근한지 인사도 잘하고 가끔 하이파이브도 하고 말도 재잘재잘 잘한다. (요즘은 "부끄러워~~"하면서 다른 사람들한테는 얼굴도 잘 안 보여주려 하는데 선생님한테는 선뜻 티셔츠 올리고 올챙이배 내밀며 청진을 부탁한다)
아직은 내가 휴직 중이라 평일에 민준이와 소아과 진료 보러 가는 게 어렵지 않은데 내가 복직하게 되면 어떻게 될지 그 부분은 참 걱정이 된다. 아기를 낳고 엄마의 복직과 퇴사, 그 두 가지의 갈림길에 서보니 이게 정말 쉽지 않은 문제라는 걸 여실히 느낀다. 어쨌든 아직은 민준이와 함께 지낼 시간이 더 남아있으니 조금 더 후에 고민해 보고... 맞벌이 가정이 되더라도 지금 다니는 소아과는 쉬이 포기할 수 없을 것 같다. 정 안되면 토요일에 진료보고 약 처방을 최대한 오~래 받으면 되니 말이다. 아이가 줄어들면서 점점 폐업하는 소아과가 많아지고 소아과 진료의의 수입도 거의 0원에 가깝다는 말도 많고... 앞으로 민준이가 자라야 될 날들을 생각하면 참 걱정스럽다. 좋은 동네 병원들이 언제까지나 오랫동안 잘 버텨주기만을 바란다.
아이를 낳고 느끼는 행복이요? 그걸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있을까요 (0) | 2024.04.13 |
---|---|
아기에게 영상을 보여줘도 될까요? 제 경험으로는 '아니요' (2) | 2024.03.17 |
예민한 엄마와 아이 (0) | 2024.02.22 |
아기 재우기, 지침서대로 되나요?? (2) | 2024.02.17 |
어지러운 머릿속, 정리가 필요한 지금 블로그에 입문하다 (0) | 2024.0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