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여당인 국가재건운동(Movimiento Regeneración Nacional, MORENA)의 후보 클라우디아 셰인바움(Claudia Sheinbaum Pardo) 후보가 총 35,923,996표를 받으며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로써 멕시코 헌정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되는 기록이 세워졌으며 수많은 논란 속에서도 국가재건운동당은 집권 여당으로의 자리를 굳혔다. 그 뒤로는 멕시코 3개 야당(PRI, PAN, PRD) 연합의 소치틀 갈베스 (Bertha Xóchitl Gálvez Ruíz) 후보가 1,650,2444표, 시민운동당(Movimiento Ciudadano)의 호르헤 알바네스 마이레스(Jorge Álvarez Máynez) 후보가 6,204,516표를 얻었다.
지난번 포스팅에서 언급했듯이, 멕시코의 부정선거 논란은 역사가 깊다. 매 선거 때마다 불거지는 논란이며 더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그저 논란만은 아니다. 멕시코 전역에서 낯 뜨거울 정도로 대놓고 부정선거를 저지르기 때문에 선거 때마다 당연히 그럴 거라고 충분히 예상되는 일이다. 다만 그러한 '행위'가 얼마나 계획적이고 어느 정도의 범위에서 이루어졌는지 차이가 날 뿐이다. 2018년 AMLO 당선 이후 대통령과 집권 여당은 멕시코 앞날이 심히 걱정될 정도로 권위주의적(autoritarismo)이고 '권력' 그 자체에 집착한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지금도 회자되는 과거의 몇몇 선거들과 견줄 정도의 '문제적 행위'를 일삼을 것이라고 짐작되었다. 그리고 그 예상은 씁쓸하게도 맞았다. 멕시코를 비롯한 해외 언론에서도 깊이 다뤄지지 않은 여러 부정행위들은 SNS와 유튜브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기록되었다. 투표함 탈취는 기본이며 투표장 공격, 투표장 공격 허위 소문 유포(예: 투표장에 폭탄 설치)로 투표 저지와 같은 일들은 시시각각 발생했으며 사람들은 핸드폰을 꺼내 너나 할 것 없이 영상으로 기록하고 공유했다. 또한 멕시코 전역에 세력을 뻗친 카르텔(los carteles)들이 투표장을 점거하며 '오직 하나의 정당(partido)만을 위한 투표함'이라고 못 박으며 인증샷을 남기기도 했다는 일종의 괴담과 같은 소문들이 나돌았다.
이런 자잘한(?) 사건들 외에 가장 기가 막힌 것은 멕시코 전역에서 투표가 종료되기도 전인 오후 5시경부터 수도 멕시코 시티 광장에서는 집권 여당이 마치 자신들의 정권 연장이 당연하다는 듯 대대적인 축하 행사를 준비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나라로 예를 들자면 아직 투표가 종료되지 않았는데 광화문 광장이나 시청 앞 등지에 집권 여당이 자신의 후보가 당선한 것을 확정한 것 마냥 대규모 축하 행사를 준비한답시고 어마어마한 무대, 조명, 사운드 장비에 기타 화려한 장식들을 가져와 설치하느라 바빴다는 얘기다. 이에 자연스럽게 멕시코 시민들은 이번 대통령 선거의 진행 과정과 아직 나오지 않은 결과에 대해 큰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투표 진행 중인 지역도 있는데 어떻게 선거 승리를 100% 확신한 듯한 일을 진행할 수 있는지 말이다. 저녁 8~9시가 훌쩍 넘어서야 멕시코 전국에서 투표가 종료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으나 이 시점부터도 일부 지역에서는 부정선거에 따른 재투표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또한 개표를 진행하는 연방선거관리위원회(INE)가 실질적으로 집권 여당과 대통령의 영향력에서 독립적이지 않기 때문에 그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한마디로, 언제나 그래왔듯이 '대환장파티'가 시작된 것이었다. 의회와 지자체 대표 선거에서도 MORENA 후보들의 압도적인 승리가 발표되면서 이에 대한 반감과 의구심은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6월 5일 연방선거관리위원회(INE)는 전체 유효 투표용지의 67%를 재검표하겠다고 발표했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후보의 당선이 확정되었다는 발표 이후 거세게 불거진 부정 선거 및 재검표 논란에 대해 현 대통령 AMLO가 "한 표 한 표(voto por voto)" 재검표 할 수 있다고 언급한 이후다. 하지만 멕시코 선거법에는 부정 선거 논란으로 인해 투표함을 열어 표를 하나씩 재검할 수 있는 조항이 없다. 연방 선거관리위원회의 자동 집계 시스템만이 유효표를 인정하는 유일한 방법인데, 재검표를 하겠다는 것 자체도 이 자동 집계 시스템을 다시 돌려보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AMLO의 'voto por voto' 발언은 그저 '립 서비스'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선거 결과에 가장 크게 반발한 이들은 3당 연합 후보 소치틀 갈베스 후보 진영과 그의 지지자들이었다. 대부분의 (적어도 교육을 받고 의식이 있는) 멕시코 시민들은 소치틀 갈베스 후보에게 큰 기대를 걸었고 이번 대통령 선거가 사실상 나라의 미래를 좌우하는 아주 중요한 고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려한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자 인터넷상으로 소치틀 갈베스 후보를 지지하며 선거 부정을 비판하고 '재투표'를 요구하는 시민운동을 벌이자는 메시지가 돌며 사람들의 단결을 촉구했다. 이 메시지들은 주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왓츠앱 등 SNS를 통해 퍼졌는데 구체적인 날짜와 시간, 장소까지 언급하며 멕시코의 미래를 위해 함께 행동에 나설 것을 장려했다. 2016년 우리나라에서 국정농단 사건으로 인해 광화문 앞에서 몇 달간 이어졌던 '촛불시위'와 같은 시민들의 단결과 행동을 꿈꾼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얘기를 들었을때 솔직히 개인적인 심정으로는 멕시코에서 한국의 촛불시위와 같은 거대한 민주주의적 행위가 이루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는데 슬프게도 그러했다. 마치 SNS 상에서는 당장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 거리로 나서 이번 선거의 부정함을 규탄하고 어떤 변화를 일으킬 것 같았으나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에 이렇게 상황이 흘러간다면 멕시코의 민주주의는 다시는 제대로 일어설 힘을 가지지 못할 것 같다. 민주주의의 맹점은 그 사회가 일정 수준의 경제, 교육, 정치 의식의 성장을 통한 성숙한 (대규모) 시민층 없이는 제대로 정착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멕시코의 경우 경제는 그렇다 쳐도 정치 의식을 가진 교육받은 성숙한 시민층이 몹시도 빈약하다. 그리고 앞으로도 성장할 수 없을 것이다. 이를 가로막는 요소들로는 계속 벌어지는 극심한 빈부격차, 멕시코 정부의 전통적인 우민 정책, 빈약한 교육 인프라 등인데 하나 같이 해결하기 쉽지 않은 문제다.
민주혁명당(El Partido de la Revolución Democrática, PRD)은 이번 의회 선거에서 상원은 2.0~2.7%, 하원은 2.4~3.1%의 득표에 그쳤다. 의석수로는 상원은 0~3석, 하원은 0~8석에 불과한 수치다. 멕시코에서 국가 정당(partido pólitico nacional)의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최소 3%의 득표율을 넘겨야 한다. 즉, 35년 전통의 민주혁명당은 현재 존폐 위기에 놓였다. 이번 선거에서 나온 무효표보다도 득표율이 낮았다는 수치를 넘어 지금은 당장 어떻게든 정당의 해체만은 막아야 하는 심각한 상황에 놓인 것이다.
20세기 중후반부터 21세기 초입까지 약 반세기 넘게 멕시코 정치는 당시 장기 독재를 이어가던 집권 여당이었던 제도혁명당(PRI), 정통 야당인 국민행동당(PAN), 그리고 민주혁명당(PRD) 세 정당이 이끌어갔다. 2000년 대선에서 PRI의 80년 장기 독재 체제가 끝나면서 새로운 정치 지형도가 그려질 것이라 예상했으나 현재 멕시코 정치의 모습은 정말 뜻밖이다. 과거 2000년 대선부터 PRI의 대항마로 불렸던 AMLO는 삼수 끝에 대통령 자리에 올랐지만 그 누구보다 권력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며 외신의 표현대로 '제도혁명당의 유령'을 끌고 왔다. 아니, 사실 현 집권당인 국가재건운동(MORENA)는 과거 PRI를 뛰어넘는 독재 정당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및 현 여당의 선거 승리에 대해 깊이 다루지 않았지만 몇몇 주요 외신에서는 '멕시코의 일당 독재 체제가 부활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우려로 멕시코의 환율은 요동쳤으며 많은 학자들과 연구자들은 멕시코의 앞날이 험난할 것이라 보고 있다. 현 멕시코 사회의 뿌리 깊은 부정부패와 여러 어려움에는 과거 80년 장기 독재 체제를 완성하며 여러 실책을 범한 PRI의 탓이 상당히 큰데 이를 비판하고 뒤집겠다고 나선 MORENA는 마치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모습 그 자체다.
* 과거 제도혁명당(PRI)의 일당 독재 체제에 대해서는 추후 개별 포스팅으로 자세하게 쓸 예정이다. 중남미지역학이나 정치학 등을 공부하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멕시코의 독특한 정치 시스템이었으며 세계의 많은 정치학자들이 주목했던 주제다. 보통 '독재'는 한 지도자, 즉 '독재자'가 권력을 독점하여 그 인물을 중심으로 하는 체제를 떠올리지만 멕시코의 경우 한 정당(partido)이 장기간 권력을 독점한 정치 시스템이 구축되었다. 이는 2000년 이후 없어진 것이라 생각했으나 이번 대선을 통해 그 체제가 다른 정당을 통해 부활했다고 보고 있다.
아직 대통령으로 재임 중인 AMLO를 비롯한 대통령 당선인, MORENA까지 사법 개혁이니 에너지 정책이니 하며 엄청난 스케일의 청사진을 발표하고 있는데 하나 같이 그 내용이 우려스럽다. (모두 개별 포스팅으로 다뤄도 될 정도의 자극적인? 내용이다) 극단적으로는 이러다가 멕시코도 현 베네수엘라와 같이 추락하고 말 것이라는 암울한 말까지 나돌고 있다. 어느 정도 경제력과 교육 수준을 갖춘 이들은 이미 캐나다, 미국, 유럽 등지로 많이 이민을 떠났다는 말마저 듣고 있는 실정이다. 다른 나라 걱정할 상황은 아니지만 멕시코의 미래는 정말 우려스럽다. 그렇지만 베네수엘라 정도의 심각한 상태까지 이르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이유는 멕시코가 가진 자원, 국토, 인구, 그리고 무엇보다 지리적 위치다. 멕시코 인들은 '미국과 가까워 불쌍한 나라'라고 말하지만 미국과 수천 킬로미터의 국경을 공유하고 있기에 가만히 있어도 얻고 있는 이점도 대단하다는 건 굳이 언급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미중 분쟁 덕분에 최근 몇 년 많은 덕을 보고 있는 멕시코는 현 국제 정세가 유지되는 한 아무리 국내 상황이 난장판일지언정, 빈부격차가 더 심각해질지언정 외관상, 규모상 성장은 이뤄갈 것이다. 그러나 그 안에서 삶을 살아내는 수많은 평범한 멕시코 인들이 감당해야 할 어려움과 분노는 갑절로 늘어날 테니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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