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3년 전부터 심심찮게 기록적인 더위와 가뭄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았던 멕시코가 올해 들어서는 더 암담한 현실에 직면했다. 쓸 물이 부족해 사용할 수 없게 된다는 의미의 '디아 세로(Día Cero)'의 시한이 점점 코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멕시코 시티와 근처의 '멕시코 계곡(Valle de México)' 지역의 수자원 관련 기관인 '멕시코 계곡 유역 수자원 위원회(Organismo de Cuenca Aguas del Valle de México)에서 밝힌 '디아 세로'의 시한은 2024년 6월 26일이다.
멕시코는 대표적인 물 부족 국가이다. 자연환경 포스팅에서 잠시 언급했지만 국토의 북부, 중부 등 약 2/3 이상의 지역이 사막 또는 고산지대이다. 문제는 큰 강이나 하천이 거의 없다시피 하여 사용할 수 있는 수자원은 거의 대부분 땅 밑에 있다. 사막 지역이면 당연히 물이 부족할 테고 그나마 내리는 비를 품을 수 있는 목초지나 산림도 부족하다. 그리고 고산 지대는 아무래도 큰 강이나 천이 존재하기 어렵고 보통 자연적으로 형성된 거대 호수가 존재하는데 이들 호수는 비가 내리면 이 비를 저장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열대성 기후를 보이는 남부 지역은 대협곡도 많고 수자원이 풍부해 물부족과 거리가 멀 것 같지만 최근 강수량 감소로 가뭄의 초기 단계에 들어섰다고 보도되고 있다.
스페인이 정복하기 전, 멕시코 시티 근처에 있는 거대한 텍스코코(Texcoco) 호수에서 강력한 문명을 가졌던 아스테카 인들은 고산 지대에서 자연적으로 형성된 호수를 영리하게 잘 활용했다. 멕시코 시티가 위치한 계곡(Valle) 지역은 주변 산들의 눈이 녹거나 물이 흘러내려 5개의 호수가 형성되었고, 우기인 5~10월 일 년 강수량의 대부분인 700mm 비가 내리면 호수면이 상승해 6개 호수가 되었고 건기에는 다시 5개가 되었다. 이 5개의 호수는 우기에 물을 저장하여 건기에도 사람들이 생활할 수 있는 물을 제공하였다. 평균 해발고도 2,200~2,300m인 고산지대에서 이 호수의 역할은 몹시 중요했는데, 이 호수가 없으면 사람들은 땅을 파고 들어가 힘겹게 물을 찾아 썼어야 했을 것이다. 아스테카 인들은 치남파(Chinampa)라는 자신들만의 농업-관개 시스템을 개발하여 효과적으로 물을 정제, 관리하고 나아가 1년에 3모작 이상의 농사를 지어 대규모 인구가 소비할 먹거리까지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문제는 스페인 정복 이후 이런 시스템에 무지했던 정복자들이 점점 호수를 메꿔나가기 시작했고 멕시코가 독립한 이후에도 이러한 시도가 이어져 멕시코 시티와 계곡 근처 지역은 더 이상 호수에서 물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현재 멕시코 시티에 소규모로 치남파(Chinampa)가 존재하지만 수자원 부족, 수질 오염, 주민들의 거부 등으로 인해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멕시코 시티와 그 인근 지역의 수자원을 공급하는 쿠차말라(Cutzamala) 시스템의 문제는 현재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별다른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극심한 가문은 최근 몇 년 동안 계속 이어져 왔고 그보다 훨씬 더 오래전부터 이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물을 얻기 위해 너도나도 땅을 파고 들어가서 지하수가 오염되고 점점 고갈되는 문제에 노출되어 왔다. 다시 말해, 멕시코 시티 지역의 물부족 사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그 기원을 두고 있지만 조금 더 엄밀히 말하자면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물자원 관리 실패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애초에 물이 부족한 지역이기 때문에 적게나마 내리는 비를 현재 존재하는 수자원과 함께 어떻게 잘 보관하여 활용할지를 논의하고 그에 대한 준비를 했어야 했는데 홍수 제어를 위해 지하 배수 터널을 뚫어 멕시코 만으로 흐르는 파누코 (Panuco) 강으로 흘러가도록 했다. 물이 부족한 지역인데도 그나마도 내리는 귀한 비를 그냥 흘려보내는 것이다. 심지어 2019년에는 7억 달러를 들여 새로운 배수터널을 완공하기까지 했다.
멕시코 북부의 사막 지역은 하루가 다르게 더욱 뜨거워지고 메말라가고 있다. 요즘 멕시코 북부의 기온은 45도를 넘나들고 있으며 작년 5월쯤에는 50도를 찍기도 했다. 아무리 건조한 지역이라도 이 정도 온도면 실내에 들어가 있다 하더라도 뜨거운 열기에 숨이 막힐 정도인데 그나마 있는 작은 물기조차 온전할 리가 없다. 멕시코의 유명한 국경 도시 티후아나(Tijuana)와 대표적 부촌이자 산업 도시인 몬테레이(Monterrey)는 '디아 세로(Día Cero)'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두 곳으로 꼽히고 있다. 멕시코 북부는 지리, 기후적인 요인으로 늘 물이 부족한 데 반해 대지는 뜨겁게 달궈지는 곳인데 몇 해에 걸친 기록적인 더위와 적은 강수량으로 상태가 매우 심각해진 것이다.
멕시코 기상청(Servicio Meteorológico Nacional, SMN) 발표에 따르면 4월 15일 기준 전 국토의 11.01%가 0~4단계 중 가장 높은 수준의 '이례적인 가뭄(4)' 상태이며 18.33%는 심각한 가뭄(3), 17.25%는 심한 가뭄(2), 18.03%가 중간 수준의 가뭄(1), 14.5%가 비정상적 건조 상태(0)이라고 발표했다. 강수량 부족으로 인한 물부족 문제가 없는 지역이 20.98%에 지나지 않는 것인데, 전 국토의 약 80%가 이미 가뭄의 영향을 크던 작던 받고 있는 것이다.
내가 학교에 다니던 꽤 오래전, 미디어와 학교에서는 우리나라는 물부족 국가인데 물을 낭비한다는 반성(?)과 함께 다 함께 물 절약을 실천하자는 캠페인이 전국을 휩쓸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정말 우리나라가 물이 부족하고 언젠가는 우리가 쓸 물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정말 수자원이 풍부한 나라다. 강, 하천도 많지만 강수량도 많은 편에 속하고(비록 특정 시기에 몰리기는 하지만) 산업화와 함께 점진적으로 수자원 관리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사실 상당히 잘 관리하는 편에 속한다. 물론 이와 관련하여 엄청난 논란을 일으켰던 4대 강 사업도 있었지만 여하튼 수자원에 있어서는 우리는 상당히 풍요롭다고 할 수 있다. 거기다 멕시코나 유럽처럼 석회가 섞여 수질이 나쁘지도 않고 사실상 수돗물은 (수도관 노후 문제가 없다면) 음용해도 문제가 없을 정도라고 하니 정말 크 편리함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다. 매일 일상에서 사용하는 물이기 때문에 그런 생각은 평소 하지 못하지만 잠시 해외에 다녀오거나 살게 되면 그 소중함이 바로 체감된다. 나 또한 그랬었고 멕시코에서 지내는 시간 동안 피부와 모발이 많이 푸석해지고 영향을 받았기에 더 말할 것도 없다. 워낙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은 해외의 화려하고 웅장한 명소들을 다녀온 후 우리나라는 별로 볼 만한 것도 없고 갈 곳도 없다는 푸념도 간혹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깨끗한 물을 걱정 없이 쓸 수 있고 동네마다 작은 하천, 강 옆에서 산책하며 여름에는 계곡으로 놀러 갈 곳도 많은 우리나라가 정말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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