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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교육 - 부실한 공교육, 비싼 사교육, 빈부격차의 원인

Sobre 메히꼬, México

by 루시초이 2024. 4. 17.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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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교육 시스템

멕시코의 교육은 크게는 기초(Básica), 중위(Media superior), 고등(Superior) 3가지로 나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유아(Preescolar), 초등(Primaria), 중등(Secundaria), 고등(Preparatoria/Bachillerato), 대학(Licenciatura), 대학원(Maestría y Doctorado) 이렇게 6단계로 나누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와 크게 다를 바는 없으며 차이점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위와 같은 정규 교육 과정 외의 모든 교육을 '평생 교육'이라는 분류로 따로 묶어 관리하고 있다는 점일 것 같다.
 

열악한 시설의 공교육

대부분의 개발 도상국, 특히 중남미 국가들에서 그러하듯 공교육 시스템은 몹시 허술하고 열악하다. 그러나 멕시코 정부 전체 예산에서 교육에 할당하는 비중은 그리 작은 편은 아니라고 하는데 그 모든 돈이 골고루 필요한 곳에 배분되지 않고 일부 항목에 지나치게 편중되어 사용되는 점이 큰 문제라고 지적된다. 예를 들어, 멕시코 국립대학들은 엄청난 예산 지원을 받고 있어 캠퍼스 규모, 시설, 교육료 지원(입학료가 엄청나게 싸다) 등의 혜택이 파격적이라고 할 만큼 좋다. 그런데 이 외 다른 공교육에 대한 투자는 몹시도 초라하다. 중학교까지 무상교육으로 지정되어 있어 학교를 보내는 게 뭐가 문제인가 싶겠지만 2020년 기준으로 전체의 20%가 넘는 학교가 상수도 시설을 갖추지 못했고 설사 상수도를 갖췄어도 하수도 시설이 없어 물 사용이 어려운 학교가 43.2%에 달하며 13%는 화장실조차 없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가장 기본이 갖춰지지 않았는데 그 외 다른 시설들은 말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교사들의 수준 역시 언제나 언론에서 지적되는 사항이며 실제 보도 내용을 보고 있으면 저런 자격 미달의 사람이 어찌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멕시코의 국립대학

UNAM

멕시코의 전체적인 교육 수준이나 인프라는 열악하기 그지없으나, 멕시코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명문 대학이 멕시코 시티에 있다. 바로 '멕시코국립자치대학교'(Universidad Nacional Autónoma de México, UNAM)이다. 멕시코는 물론, 중남미, 전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곳으로써 멕시코 정재계 인사들의 대부분이 이 학교 출신이며 노벨상 수상자도 3명이나 있다. 대부분의 등록금을 정부에서 내주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내는 돈이 약 500원에 불과하다. 캠퍼스는 어마어마하게 넓어서 서울대 기준으로 약 5배에 달하며 프로축구 1부 리그 팀도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등록 학생 수는 인근 주민들까지 마구 등록을 해서 약 30만 명에 달하는데 실제 학생 수도 적지 않다. UNAM 외 멕시코 각 주에 국립대학이 있으며 모두 뛰어난 교육 수준을 자랑하기 때문에 그 지역에 거주하는 우수한 학생들이 많이 진학한다. 대표적으로 할리스코(Jalisco) 주 과달라하라(Guadalajara)의 과달라하라대학교(Benemérita Universidad de Guadalajara), 푸에블라(Puebla)의 푸에블라국립자치대학교 (Benemérita Universidad Autónoma de Puebla, BUAP) 등이 있다. 모두 등록금을 거의 내지 않을 정도로 저렴하며 캠퍼스 규모도 엄청나게 크다. 일례로 내가 공부했던 푸에블라국립자치대학교 (BUAP)도 1년 등록금이 우리나라 돈으로 약 3만 원 정도라고 그 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이 얘기했으며 크기도 우리나라의 보통 '동'이 2,3개는 합쳐질 정도로 정말 엄청나게 컸다. 그 학교 안에서만 운영하는 버스가 따로 있으며 그 주변을 운행하는 시내버스들도 여러 대인데 사실 차가 없다면 이동할 생각을 포기해야 한다. 졸업 직전 학위 수령으로 몇 번 방문하면서(대학원 건물은 다른 캠퍼스에 있었기 때문에) 버스로 10~20분 이동하는 긴 여정에 몹시 지쳤던 기억이 있는데 UNAM이야 말할 것도 없다. 국토가 넓어서 그런지 땅을 사용하는 스케일이 남다르다. (아니면 미국의 영향일까?) 재밌는 건 대학원이나 일부 단과 대학들은 도시 여기저기에 일부 건물로 흩어져 있는데 주로 역사문화지구나 역사적으로 오래된 구역에 옛날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이런 스타일은 유럽에서 많이 보인다고 들었는데, 유럽과 미국의 영향(학부 캠퍼스)이 혼재되어 있는 것 같다.
 

멕시코의 사립대학

ITESM, Santa Fe

멕시코에서 공부할 때 들었던 얘기는 주로 정치가 집안의 자녀들이나 정계 진출을 꿈꾸는 경우 국립대학, 특히 UNAM으로 진학하는 경우가 많으며 재계 진출을 꿈꾸거나 소위 금수저들의 대다수는 유명 사립 대학으로 진학한다는 게 요즘 추세라고 한다. 가장 유명한 대학들 중 하나는 몬테레이 공과대학교(Instituto Tecnológico y de Estudios Superiores de Monterrey, ITESM)멕시코 전역에 35개의 캠퍼스가 있으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몬테레이 캠퍼스가 본교이다. 공과대학교인 만큼 과학, 이공계 분야와 경제, 경영학에서 강세를 보이며 요즘에는 Tec de Monterrey 다닌다고 하면 멕시코에서는 단연 엄지 척을 보여준다. 그 의미는 공부도 잘하거니와 경제력도 받쳐준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외 예수회가 설립한 이베로아메리카대학교(Universidad Iberoamericana)가 멕시코 시티, 푸에블라, 티후아나(Tijuana), 레온(León), 토레온(Torreón) 등 5개 캠퍼스를 두고 있으며 푸에블라의 경우 촐룰라(Cholula) 시에 있는 아메리카대학교(Universidad de Las Américas Puebla)도 유명하다. 요즘 멕시코의 많은 사립대학교들이 한국의 대학교들과 교환학생협정을 맺고 그 범위를 점점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과거 내가 공부했던 외대에도 Tec de Monterrey에서 첫 교환학생을 왔고 현재는 계속해서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알고 있다)
 

상황이 허락된다면 사립학교로

경제적 여유가 되는 경우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원스톱으로 이어지는 사립학교(보통 Colegio라 부른다)에 보내고 있다. 물론 공립학교에 다닌다고 하여 모두 가난하거나 그 아이의 수학 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상황이 된다면 사립학교를 1순위로 고려하는 것이다. 부모 모두 교육 수준이 높고 전문직에 종사한다 하더라도 멕시코의 임금 수준이 대단히 낮은 편이라 자신의 능력으로 사회적 성공을 거머쥔 부모들이더라도 그리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러한 이유로도 많은 아이들이 공립학교에 진학한다. 보석 같은 아이들은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다음 단계의 교육 과정으로 무난히 잘 진학하기도 하지만 그리 흔하지 않다. 
 

벌어지는 교육의 질, 기회, 빈부 격차

2023년 El Economista지의 기사에 따르면 멕시코의 25-64세 성인의 56%가 초등학교 또는 중학교를 졸업했고 23%만이 고등교육을 받았으며 21%가 대학교 이상의 교육 과정을 마쳤다. 이 수치는 OECD 국가들과 비교해도 현저히 낮으며 중남미 지역에서도 칠레가 32%라는 수치와 비교할 때 상당히 낮다. 그러나 이러한 성인들 10명 중 8명은 자신의 자녀들이 대학교까지 졸업하기를 바란다고 한다. 하지만 사회 인프라 취약, 경제적 어려움, 지역 격차 등으로 사실상 이뤄지기 어려운 꿈에 그치고 있다. 3-5세 아이들의 43%만이 유치원 등 교육 과정을 받고 있고, 6-14세는 이 수치가 97%로 높아지지만 15-17세에 82%로 떨어지다가 18-22세 48%로 급감하고 23-29세는 단 14%만이 상위 교육 과정을 적어도 '이행'중에 있다고 나타났다. 사실상 고등학교 과정에서 학교를 포기하는 비중이 가장 많이 늘어나는 것인데 이는 교육 기관의 부재, 열악한 인프라, 지역 격차, 사회-경제적인 상황에서 기인한 것이다. 지역별로도 교육 수준의 상황이 매우 다른데 교육 과정을 포기한 비율이 단 0.1%로 나타난 할리스코(Jalisco)가 있는 반면 북부의 치와와(Chihuahua) 주는 그 비율이 15.1%로 엄청난 차이를 보였다. 주로 북부의 시날로아(Sinaloa), 두랑고(Durango), 코아우일라(Coahuila) 주, 그리고 치안이 불안정한 미초아칸(Michoacán), 과나후아토(Guanajuato) 주들이 12~15%의 비율을 기록하며 교육 상황이 상당히 열악한 것을 입증했다. 공통적으로 이들 지역은 멕시코 내에서도 마약 카르텔의 활동이 아주 활발하여 치안이 몹시 좋지 않다는 특징이 있다. 또한 멕시코는 현재 교환학생 제도와 같은 세계적인 교육 교류에서도 매우 뒤처졌는데, 교환학생으로 해외 교육 제도를 경험한 비율이 단 0.9%로 칠레의 1.1%, 터키의 2.3%, 기타 OECD 국가들 중 스위스 18.1%, 호주 26%, 오스트리아 18% 등과 비교했을 때 엄청나게 미미한 수준이다. 멕시코보다 낮은 수준의 국가들로는 콜롬비아, 브라질(모두 0.2%) 뿐이었는데, 멕시코의 경제 규모와 수준을 고려하면 이들 국가와의 비교는 별 의미가 없다. 이러한 교육의 질과 기회의 격차는 멕시코 사회의 고질병이자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는 빈부격차를 고착화하고 있다. 원래 교육이란 게 그렇지 않은가. 소수의 특권을 모두 독점하고자 하는 사회 상류층에게 양질의 교육과 그 기회를 한정한다면 그 나라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사람이 똑같이 무조건으로 평등한 교육을 받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그런 것을 주장하는 것도 몹시 어리석은 일이다. 다만 교육 기회와 그 출발선은 평등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그 공간과 그곳에서 제공하는 교육의 수준이 양질일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정부와 사회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 기회와 입구를 점점 좁게 만들고 폐쇄적으로 만드는 행위, 즉 '무분별한 사교육화' 또는 '교육의 계급화' 시도는 다시 말하면 사회의 빈부 격차를 늘리고 고착화시키는 첫 번째 스텝이라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해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다른 이들은 못 들어오게 한다는 건데 우리나라는 어떤지 멕시코의 사례를 통해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내가 한창 뭣도 모르고 공부를 막 시작하던 시절, 독일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한 교수님의 독일 교육사 수업을 들은 기회가 있었고 마침 그때는 '자율형 사립고'라는 이름으로 기타 이상한 시스템을 만들어 강행하던 때였다. 그 정책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잘 판단이 서지 않았는데 '교육의 기회는 공평하게 주어져야 하고 그 출발선도 같아야 한다. 결과가 달라지는 건 개개인의 역량과 재능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어찌 보면 당연한 거지만 그 출발마저 차등을 두고 계급화시킨다는 것은 교육의 불평등을 심화한다'라고 했던 그 수업의 결론이 무척 와닿았고 지금까지도 기억에 강하게 남아있다.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게 하는' 이런저런 장치들을 만드는 데 그것을 반대하지 않고 "내 아이는 바늘구멍을 통과할 수 있어!"라고 믿으며 어린 나이부터 입시 전쟁에 뛰어들게 하는 일부 모습들이 과연 바람직한 방향인지 깊이 생각해 보는 게 어떨까. 왜 '그들이 만드는 그들만의 리그'에 나 좀 끼워달라고 그렇게 애를 써야 할까. 다행히도 내년부터는 자율형 사립고든 외고든 특수목적고가 없어진다고 하니 이를 반대하는 나로서는 정말 반가운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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