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는 지금] 마약과의 전쟁에도 굳건한 멕시코 카르텔, 잃어버린 평화를 원하는 국민들
올 7월 대선을 앞두고 멕시코의 주요 대선 후보들은 가톨릭 교회가 주도하는 '평화를 위한 국가적 결의'(Compromiso Nacional por la Paz)에 차례로 서명을 마쳤다. '평화를 위한 국가적 결의'는 치안과 정의를 회복하기 위한 117개의 제안을 담고 있다. 이는 그만큼 멕시코 인들이 15년 넘게 이어지는 극도의 치안 부재 상황을 더 이상 견디기 어려움을 보여준다. 멕시코에서의 가톨릭 교회는 멕시코 혁명 이후 꽤 오랫동안 국가 권력과 대립을 이어가다가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결국 종교 본질의 역할에만 만족하는 것으로 그 영향력이 상당히 축소되었고 이후 국가의 정치, 사회, 경제 등에 개입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는데 이번에 그 교회가 나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멕시코에 대해 떠오르는 이미지를 물어본다면 아마 '불안정한 치안'과 '마약 카르텔'이 먼저 떠오를 것이다. 잘 모르기도 한데 어쩌다 보도되는 내용들도 마약 카르텔로 인해 나라 전체가 공포에 떤다는 그런 기사들만 접했으니 말이다. 틀린 말도 아니고 날이 갈수록 상황이 몹시 심각하긴 하다. (그래도 얘기를 들어보면 브라질 정도의 수준은 아닌 것 같지만 그곳이나 멕시코나 위험하긴 마찬가지)
한 번쯤은 들어봤을 멕시코의 '마약과의 전쟁'. 시작은 2006년 대통령에 당선된 펠리페 칼데론 (Felipe de Jesús Calderón Hinojosa)이 후보 시절 마약 카르텔이 국가 전반을 휘젓는 상황을 종식시키겠다며 '마약과의 전쟁'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것에서 시작한다. 이미 멕시코의 마약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는데 그 이유는 세계 1위의 마약 유통 시장인 미국과 수천 킬로미터의 국경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멕시코의 마약 산업은 날로 번성하고 있었고 지금도 '장기 호황'을 이어가고 있다. 아마 넷플릭스 드라마 <Narcos: Mexico>를 본 분들이라면 멕시코 마약 카르텔의 성장기를 잘 이해하고 있을 거다. 나는 보다 말다 했는데 그 역사는 알고 있지만 원래 조폭이나 어둠의 세계를 화려하게 조명하는 작품은 좋아하지 않아 영 내키지 않았다. 그래도 고증은 잘 된 드라마라고 생각했는데 왜 이런 슬프고도 씁쓸한 소재로 멕시코 이야기가 다루어져야 하는지 참... 멕시코 국민은 아니지만 참 안타까웠다.
여하튼 그전까지도 멕시코 카르텔이 멕시코 국내외 안팎에서 가지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영향력은 이미 멕시코 정부를 넘어선지 오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일상 시민들의 삶 전체를 송두리째 흔들고 위협하는 정도는 아니었다. 같은 하늘 아래 같은 땅에서 살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벽으로 분리되어 각자의 세계에서 잘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 세계'와 엮이지 않았다면 사실 별다른 위험이나 불편함은 느끼지 않았던 것이다. 일반 시민들은 마약 카르텔 조직들을 딱히 본 적도 없을뿐더러 설사 봤더라도 알아볼 리도 없거니와 그다지 관심도 없었는데 그런 상황은 2007년쯤부터 서서히 변해가기 시작했다.
내가 멕시코에 교환학생으로 처음 갔던 딱! 그 시기였던 것이다. 2006년 12월에 갔으니 칼데론 대통령 임기가 시작되면서 바로 그 대망의 '마약과의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점. 당시 스페인어를 익히고 살아남는 게 최우선 과제였던 나는 그런 상황에 대해서는 전혀 인지하지 못했고 겉으로 보이는 평화롭고 여유로운 멕시코 사람들과 그 사회에 몹시 만족하며 지냈다. 1년 휴학을 하고 스페인어를 더 공부하고 오기로 한 후 언어가 익혀지자 조금씩 눈에 들어왔던 멕시코 사회는 달라지고 있었다. 내가 한국으로 떠나던 2008년 연말쯤에는 흉흉한 분위기가 전반에 깔렸다.
그때부터였다. 4개의 거대 조직으로 운영되던 멕시코 마약 카르텔 사회가 멕시코 정부의 '마약과의 전쟁'으로 변화를 겪으면서 마치 오래 전 중국의 '춘추 전국 시대'와 같이 거대한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평화롭게 지내던 주택가, 상점가, 학교, 공연장 등등 어디 가릴 것 없이 전국 모든 곳이 '카르텔 VS 카르텔', '카르텔 VS 정부군', 심지어 '카르텔 VS 카르텔 VS 정부군' 간의 전쟁터가 되었고 그로 인해 수많은 무고한 사상자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상황은 빠르게 악화되어가서 칼데론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가기도 전에 멕시코 내부에서는 '마약과의 전쟁은 실패했다'라는 혹평이 쏟아졌고 국민들의 지지도 급속도로 식어갔다.
그 반증으로 2012년 대선에서는 수많은 스캔들과 약점과 논란에도 불구하고 70년 장기 집권으로 멕시코를 부패의 수렁으로 몰고간 제도혁명당(PRI)의 페냐 니에토(Peña Nieto)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당선 바로 다음 날 스페인과 멕시코 유명 일간지에서는 대통령 당선자와 멕시코 시날로아 카르텔(Sinaloa Cartel)의 셀라야 베네수엘라(Rafael Humberto Celeya Venezuela)가 다정하게 찍은 사진 한 컷을 실었다. 아무 설명 없이 단지 사진 한 장만 1면에 게재했는데 파장은 어마어마했다. 이 사람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다른 조직원 3명과 함께 체포되었는데 그중 '엘 차포(El Chapo)'로 알려진 마약왕 호아킨 구스만(Joaquín Archivaldo Guzmán Loera)의 사촌인 헤수스 구스만 (Jesús Gutiérrez Guzmán)도 포함되었다. 여하튼 이후로도 페냐 니에토 대통령과 마약 카르텔 간의 모종의 거래 내지는 '더러운 협력 관계'가 연이어 폭로되었다.
2012년 여름, 진짜 공부를 하러 다시 방문한 멕시코는 몇 년 전과는 다르게 아주 살벌한 전쟁판이었고 몹시 낯설게 느껴졌다. 전체적으로 사람들이 긴장되어 있고 카르텔의 위협이 곳곳에 스며들었다는걸 느꼈는데 그런 분위기는 대도시보다는 인적이 드문 시골과 소도시에서 두드러졌다. 언론에서 발표되지 않는 수많은 비극과 사건들이 발생했는데, 우리가 검색으로 찾아보는 내용들은 실제 발생하는 일의 절반도 반영하지 못한다고 보인다. 당시 멕시코 시골들은 점점 유령 마을이 되어서 버려지기 시작했는데 거대 조직이 무너지면서 파생된 수많은 소규모 카르텔들이 작은 마을들을 본인들의 거점으로 삼으면서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들고 있었다. '치안세'를 요구하고 무법자로 행동하면서 마음에 안 들면 총으로 일가족을 몰살한다거나 자기들끼리의 내분으로 인해 마을이 전쟁터가 되어 한밤중에 수많은 마을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는 등 영화에서나 볼법한 일들이 발생해서 사람들은 얼어붙다시피 했다. 더 이상 살 수 없다며 살던 집과 고향을 버리고 대도시로 내쫓기듯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이들은 다시 새로운 곳에서 도시 빈민으로 전락하여 안 그래도 심각한 빈부 격차가 더 벌어지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은 몇 년 전에서야 기사화 되었는데 실제로는 이미 2007년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나는 몹시 운이 좋게도 위험하거나 큰 사건들이 일어나는 순간마다 다른 곳에 있거나 피해갈 수 있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그 위험한 곳에 어떻게 20대 여자 혼자라는 악조건을 가진 채 겁 없이 그곳으로 갔을까 싶다. 잘 몰랐기에 용감했던 거일 수도 있겠고,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어느 정도인지 체감하지 못했기 때문도 있을 것이다. 너무 많은 사건들을 보고 간접적으로 체험했으나 그중 아주 극히 일부만 기사로 나오는 걸 보았고 대부분은 그냥 그 지역 사람들끼리 쉬쉬하면서 묻혀버리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아주 극히 조심하면서 지내고 오로지 공부만 해서 생각보다 빨리 학위를 딸 수 있긴 했다만 정말 여행이라고는 해보지 못하고 돌아오게 되었다. 그 후로 언젠가 한 번은 갈 수 있겠지 생각하는데 멕시코 치안이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글쎄... 가도 괜찮을지는 모르겠다.
여행을 워낙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은 뭔가 새롭고 이국적이고 자유롭고 여유로운 멕시코와 남미에 일종의 '낭만' 같은 걸 갖고 있는 것 같다. 스페인어를 전공하고 거기에서 살고 와서 다 아는 사람으로서는 솔직히... 스페인어 구사 능력이 없으면 정말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 몇 곳을 제외하고는 다시 생각해 보라고 하고 싶다. 카르텔의 위협도 무서울 수 있으나 사실 그것보다는 그로 인해 심각해진 치안 상황으로 인해 강도, 살인, 강간, 소매치기 등의 범죄가 치솟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처럼 다니면 하루가 지나기 전에 다 털릴 가능성이 몹시 높다. 과장하지 말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만약 멕시코나 남미에 살면서 아직까지 험한 일을 안 겪었다면 '천운'을 만난 것이니 몹시 감사해야 한다.
2023년 작년 전반기에만 멕시코에서는 15,082명이 살인으로 사망하였고 이는 인구 10만 명 당 12명이 희생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멕시코 통계청이 발표했다. 한 때 정말 심각하던 시기 10만 명 당 20명이 희생된다는 지표가 나온 적도 있었는데 그때보다는 나아지고 있으나 이 수치는 여전히 몹시 높은 수치다. 그리고 단순히 살인 사건에만 국한된 것이라는게 문제다. 2007년 이전까지는 평화롭기 그지없었던 과나후아토 주(Guanajuato)는 지난 금요일에서 일요일까지 3일 동안 28명이 살인 사건으로 희생되어 전국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 뒤로 멕시코 주 (Estado de México)가 22건, 미초아칸 주(Michoacán)가 20건, 누에보 레온 주(Nuevo León)가 17건, 할리스코 주(Jalisco) 13건을 기록했다. 2024년 1월 한 달에만 전국적으로 197명이 살해되었고 670명의 피해자가 발생했는데 이는 하루 평균 '67건'이 발생한 셈이다. 오랜 시간 불안정한 치안으로 고통받는 멕시코 인들이 '평화'를 외치는 건 당연한 이치다. 부모님 집에 잠시 놀러 간다고 고속도로를 진입하기 전에 '제발 아무일 없이 무사히 다녀올 수 있게 해 주세요'라고 진심으로 기도하고 차를 몰고 가는 상황이 정상이라고 할 수는 없는 거다.
올해 대선에서 앞으로 6년을 이끌 새로운 대통령, 행정부, 가톨릭 교회와 멕시코 인들이 전쟁터가 되어버린 이 상황을 어떻게 바꾸어 나갈지 기대 반 우려 반 바라보게 된다. 부디 멕시코에 있는 모든 이들이 안전하고 평화롭게 지낼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