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멕시코 정치 - 대통령 중심제, 연방제, 제도혁명당(PRI)
멕시코의 정치 제도는 바로 위에 붙어있는 이웃 나라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나라 이름부터가 '멕시코 연방'이지 않은가. 국호에서 알 수 있듯이 연방제이고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하고 있다.
행정부
국가원수이자 행정부 수반은 대통령(Presidente de los Estados Unidos Mexicanos)이다. 현재는 58대째인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Andrés Manuel López Obrador, AMLO)다. 20세기 초까지 재선이 가능했으나 멕시코 혁명 이후 4년 단임제로 바뀌었다가 1934년부터 6년 단임제로 변경되어 현재까지 유지 중이다.
입법부
연방 의회(Congreso de la Unión)이며 미국과 같이 양원제로서 상원과 하원이 있다.
상원(Senado de la República)은 총 128석이다. 그중 96석은 멕시코 32개 주(멕시코 시티 포함)에 3석씩 배분된다. 이 3석이 배분되는 방식은 주마다 각 정당이 우선순위가 다른 2명의 후보자를 올리면 유권자는 정당별로 1표를 투표하고 최다 득표를 얻은 정당은 2명 모두 당선되고 2등을 한 정당은 우선순위가 높은 한 명만 당선되는 식으로 3석을 채운다. 나머지 32석은 전국구를 대상 비례대표제로 유권자는 앞서 96석을 뽑을 때의 1표와 별도로 또 다른 1표를 행사한다. (결국 상원 의원 선거에서 2표를 행사하는 것이다) 상원 의원의 임기는 6년이다.
하원(Cámarea de Diputados)은 총 500석이다. 300석은 선거구별 소선거구제, 200석은 전국을 5개로 나눈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선출된다. 한 정당이 300석 넘게 의석을 차지할 수 없다. 하원 의원의 임기는 3년이다.
본래 모든 의원의 연임이 금지되었고 중임은 가능했다. 그러다 2014년 헌법을 개정하여 현재 하원의원은 4선까지, 상원의원은 재선까지 가능해져 둘 다 12년 연임이 가능하다.
사법부
멕시코 국가대법원(Suprema Corte de Justicia de la Nación)이다. 대법관은 11명이고 그 중 한 명이 대법원장이다. 대법관은 대통령이 지명하지만 상원의 2/3 이상 동의를 얻어야 하며 임기는 15년이다.
선거
모든 연방선거를 하루에 다 끝낸다. 대통령을 뽑는 날 국회의원도 뽑고 일부 주지사, 지자체장, 지방의회 선거까지 치러지기 때문에 투표용지가 엄청나게 길어지거나 너무 두꺼워 뭘 제대로 알고 투표하는지 궁금해지기조차 하다. (실제 2012년 대통령 선거일에 투표장에 가서 지켜봤는데 어마어마한 투표 용지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선거 한 번 치르고 나면 권력 구도는 물론이고 구성원까지 모조리 바뀌어버려 어제와 오늘이 완전 다른 세상이 되기도 한다.
불안정한 치안, 그리고 정치에까지 깊숙이 개입하는 마약 카르텔 때문에 선거 기간 중 후보가 암살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선거철만 되면 어느 지방에 아무개 후보가 집 앞에서 총살당했다라던지 사무실 앞에서 괴한의 습격을 받았다 라든지의 뉴스가 매일 쏟아져 나오는 실정이다. 너무 많은 사람이 죽다 보니 사실 목숨 걸고 선거에 나간다고 봐야 한다.
선거 전에도 이리 뒤숭숭한데 선거 당일에도 많은 비리와 음모가 펼쳐진다는 증언이 여전히 많다. 멕시코의 부정 선거 논란은 역사가 깊은데 (-_-) 그중에서도 암암리에 많은 유권자들이 알고 있는 것은 금권 선거이다. 유권자들에게 일종의 금품이나 어떤 경제적 이익, 대가를 지불하고 표를 획득하는 방식인데 도시보다도 시골이나 소도시에서 자주 발생한다. 사실 대단한 고가의 물품이나 금액이 아니라 그저 시끌벅적한 피에스타(Fiesta)라던지 연회를 열어서 신나게 먹고 마시고 간단한 답례품이나 소액의 상품권 등을 제공하는 정도로도 투표를 약속받는 사례가 왕왕 일어난다고 한다. 이 점은 아무래도 멕시코의 낮은 교육 수준, 극심한 빈부 격차, 그리고 앞의 두 가지 요인이 시골이나 소도시에서 더 큰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으로 봐야 한다.
멕시코 혁명과 멕시코 현대 정치
멕시코 혁명은 1910년 민주주의 제도 확립을 외치며 발생하여 1940년이 되어서야 끝을 맺는데, 이 혁명을 계기로 멕시코는 여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과 달리 군사독재, 군부 쿠데타, 내전 등을 겪지 않고 비교적 무난하게 20세기 중후반을 보냈다. 그렇다고 멕시코의 정치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하여 민주주의가 잘 정착된 것은 결코 아닌데, 멕시코 혁명으로 탄생한 제도혁명당(PRI, Partido Revolucionario Institucional)이 창립한 해인 1929년부터 2000년까지 거의 70년을 실질적인 일당 독재를 지속하면서 부패, 국가의 통치력 부재, 마약 카르텔과의 뒷거래로 인한 치안 불안 등의 문제를 키워왔다. 그리고 사실상 '일당 독재'라는 말 자체가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않았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용어다. 세계의 많은 정치학자들은 이렇듯 몹시 독특하고 기괴한 멕시코의 정치 형태를 주목하며 많은 연구를 해왔는데, 가장 일관되게 나오는 말은 "멕시코는 결코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제도혁명당의 일당 독재 체제는 1982년 금융 위기 이후 점차 금이 가기 시작했고 2000년에는 드디어 사상 최초로 야당인 국민행동당(PAN) 출신 대통령 후보였던 비센테 폭스(Vicente Fox)가 당선되면서 드디어 멕시코에 민주주의가 실현되었다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러나 2012년 제도혁명당(PRI)의 엔리케 페냐 니에토(Enrique Peña Nieto) 후보가 당선되면서 다시 집권 여당의 자리를 꿰찼다. 그러다 2018년 대통령 선거에서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AMLO)가 국가재건운동(MORENA, 모레나) 정당을 차리고 3번째 선거에 도전하여 드디어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이에 현재는 제도혁명당(PRI), 국민행동당(PAN), 민주혁명당(PRD) 3당이 선거 연합을 결성하여 사실상 양당제로 재편되었다. 올해 7월 치러질 2024년 대선은 어떤 결과가 나올지 귀추가 주목된다. 어쨌든 제도혁명당의 70년 일당 독재와 같은 현상은 2024년 현재까지는 없다.
현 대통령 AMLO에 대해서는 높은 인기와 지지율을 유지한다고 우리나라 언론이나 자료에서 평가하고 있지만 실상은 많이 다르다. 사실 멕시코 언론이야 거의 사회주의 체제의 관영 매체와도 다를 바 없이 정부의 대변인 수준에 지나지 않아 실제 여론이 어떤지에 대해 멕시코 외부에서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현재 멕시코에서 살아가고 있는 대다수의 많은 이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현 대통령과 집권 여당에 대한 반감이 부패할 대로 부패했다는 제도혁명당(PRI)에게 가졌던 그 감정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다. 아니, 높다 못해 사실 아예 희망을 잃어버린 느낌마저 든다. 나 또한 현재는 멕시코에서 거주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 사정을 아주 세세하게 하나씩 알 수는 없으나 현재 멕시코의 집권 여당은 장차 제도혁명당(PRI)을 뛰어넘는 수준의 무언가를 보여줄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물론 그 방향이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자신들과 뜻을 같이 하거나 찬성하지 않는 이들에게 밑도 끝도 없이 '밀어내기'를 시전하고 바른 소리를 내려는 지식인과 언론인들의 입을 막으려고 한다는 정도로 알고 있는데, 그렇기 때문인지 그 실상을 파악하기가 조금 어렵다. 다만 AMLO가 매일 기자들과 가지는 대정부 브리핑이나 공식 석상에서의 발언을 들어보면 현 대통령과 집권 여당이 국민에게 갖고 있는 인식과 자세가 어떤지 조금 드러난다. 일국의 국가 원수,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나라를 대표하는 막중한 자리에 있고 국민을 위해 헌신한다는 느낌보다는 마치 '교장 선생님이 철없는 어린 학생에게 쉽고 재밌는 말로 훈화하고 가르치는' 느낌의 단어와 표현을 사용하는 점이 가장 눈에 띄었다. 그 점에서 현재 멕시코 정치를 이끌고 있는 이들이 어떤 성향인지 조금이라도 알 수 있지 않을까?
멕시코 혁명과 정치 분야는 내 논문 주제이기도 해서 앞으로 쓸 이야기도 많은 부분이라 이후 하나씩 풀어내야겠다. 멕시코의 '제왕적 대통령제' 도 재밌는 주제고 특히 제도혁명당은 수많은 이야깃거리가 있는 '문제적 정당'이다. 부디 올해 선거를 앞두고 멕시코의 많은 정치인들이 안전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