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여자 골프의 아름다운 전설, 로레나 오초아 (Lorena Ochoa)
천재적인 실력, 올곧은 인성, 탄탄한 집안, 반짝거리는 젊음까지 모든 걸 다 갖췄다고 하면 "그런 사람이 어디 있어!"라는 말이 절로 나올 테다. 하지만 정말로 그런 인물이 있다. 바로 전설로 남은 멕시코 출신 골프 여제 '로레나 오초아(Lorena Ochoa Reyes)'가 주인공이다.
금수저 집안의 골프 신동
1981년 11월 15일 멕시코 과달라하라(Guadalajara)에서 부동산 개발업을 하는 부유한 집안의 4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로레나 오초아는 5살 때 처음 골프를 시작하고 6살에 처음 출전한 주 대회에서 우승을 했다. 멕시코에서도 부유한 도시로 손꼽히는 과달라하라에 풍족한 집안이라니! 제대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이 작은 꼬마 아가씨가 골프채를 한 번 잡더니 급기야 우승까지 해버린 것이다. 현재 이런 일이 있다면 당장 '골프 영재', '골프 신동'으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을만한 사건이다. 이 골프 신동은 다음 해 7살에는 전국 대회에서 우승을 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이것은 정말 시작에 불과했다.
화려한 아마추어
오초아는 총 27개의 주 대회와 44개의 전국 대회에서 우승을 하고도 모자라 1990, 1991, 1992 주니어 월드 골프 챔피언십에서 연속 우승을 했다. 이후 골프 명문으로 알려진 미국 애리조나 대학에 골프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2001~2002년 미국대학스포츠협의회(NCAA)의 총 10개 대회에서 8번 우승을 하고 2년 연속 올해의 선수 (Player of the Year)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렇게 화려한 아마추어 시절의 경력은 다른데 한 눈 팔지 않고 골프에 전념한 올곧은 자세에서 가능했던 게 아닐까?
세계 골프계 정상 등극
2003년 LPGA에 데뷔해 우승 없이 신인상을 바로 거머쥐더니 2004년 5월 16일 LPGA 투어 첫 대회에서 우승하였다. 이후 2007년 브리티시 여자오픈, 2008년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 2개의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하며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에 비견되는 '골프 여제'라는 수식어가 붙기 시작했다. 2006년과 2007년에는 AP 통신이 선정한 '올해의 여자 선수'에 오르기도 했고 2007년에는 단일 시즌에 약 400만 달러가 넘는 상금을 벌어들인 최초의 선수라는 기록도 세웠다. 그 해에 세계 랭킹 1위에 올랐으며 은퇴 당시까지 LPGA 투어 통산 27승, 메이저 2승, 158주 연속 세계 랭킹 1위의 기록을 세웠다. 도저히 깨지지 않던 이 기록은 작년 6월 우리나라의 고진영 선수에 의해서 13년 만에 깨졌는데, 당시 오초아는 LPGA 소셜 미디어를 통해 고진영에게 "이렇게 오래 세계 1위를 유지하는 것은 정말 엄청난 일"이며 "최고의 자리에서 계속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라고 덕담을 건네기도 했다.
갑작스러운 은퇴
2010년 4월, 세계 랭킹 1위에 오른 지 만 3년을 채운 날 오초아는 세상이 깜작 놀랄 만한 소식을 발표했다. 28살의 젊은 나이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겠다는 갑작스러운 발언에 모두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은퇴 발표 전 해인 2009년, 오초아는 멕시코 항공사인 아에로 멕시코(Aeromexico) 사장 안드레스 코네사와 결혼한 뒤 경기력이 다소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실 그 해 자신이 주최한 대회인 로레나 오초아 인비테이셔널(Lorena Ochoa Invitational)에서 "개인적으로 골프보다 다른 일 (가족, 자선 재단 등)이 더 중요하다. 그것이 나의 주된 관심사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은퇴 후 약 10년이 되던 해에 한 팟캐스트에 출연해서 "사람들은 그 자리(정상)에서 은퇴하는 것이 정말로 어려운 일이라고 하지만 내게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내 스스로 약속한 시기였으며 결혼할 때가 됐고 아이를 가질 준비가 됐었다. 골프는 더 이상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인생은 짧기 때문에 새롭게 앞으로 나아가야 했고 젊은 시절 은퇴한 것을 후회한 적 없다."라고 말했다.
LPGA 투어 명예의 전당
지난 2022년 LPGA는 "명예의 전당 입회 자격 조건을 완화하기로 했다"라고 밝혔다. LPGA 투어 명예의 전당은 1998년부터 포인트 제도로 운영되고 있다. 1) 포인트 27점, 2) 메이저 우승, 3) 시즌 평균 타수 1위, 4) 올해의 선수 중 하나의 조건을 충족해야 하며 투어에서 10년간 회원으로 활동해야 했다. 그러나 LPGA가 10년간 회원으로 활동해야 한단 조건을 완화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이에 따라 모든 조건을 충족했지만 LPGA 투어에서 8년 활약하고 은퇴해 '10년 활동' 조건을 채우지 못하고 LPGA 명예의 전당엔 오르지 못했던 오초아가 LPGA 투어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게 되었다. 오초아는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엔 2017년에 헌액 되기도 했다.
로레나 오초아 재단
오초아는 저소득층의 교육을 지원하고 문맹 퇴치에 앞장서는 자선 사업을 전개하기 위해 '로레나 오초아 재단(la Fundación Lorena Ochoa)'을 설립하였다. 이 재단은 2004년부터 그녀의 고향인 과달라하라에 있는 La Barranca 학교(Centro Educativo La Barranca, 초·중학교)의 가장 중요한 자선가로 등장하며 사실상 학교가 운영될 수 있는 '재원'이 되었다. 그간 졸업한 학생 수만 6000여 명이 넘는다. 오초아는 "그들의 삶과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특별한 일이다"라고 하며 "내가 하는 가장 최고의 일이다"라고 했다. 극심한 빈부 격차로 고통받는 대다수 멕시코 국민들과 아이들을 위하는 진정한 길은 교육이라는 숭고한 신념을 직접적인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오초아가 은퇴 전과 이후에 한 인터뷰로 미루어 볼 때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오초아는 짧았던 선수 생활의 정리도, 세계 최정상의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도 아쉽지 않았다. 앞으로 자신의 할 일은 개인 기록과 타이틀을 세우는 게 아니라 멕시코의 미래를 위한 교육 자선 사업이라고 굳게 믿었고 이미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정한 아름다움
흔히 성공과 그에 따르는 부와 명예에 취해 잘못된 길로 빠지는 경우를 종종 접하게 된다.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모든 것을 다 이룬 위치'에서 우리 주변의 소외된 이들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그 마음이 변치 않고 계속 이어지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며 갈수록 살기 팍팍해지는 세상에 그러한 모습이 줄어드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더군다나 아직 30살도 안 된 어린 나이에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라 부와 명예를 거머쥔 사람이라면 자신의 정체성과 신념을 올곧게 유지하는 게 쉽겠는가. 오초아가 은퇴 후 15년이 다 돼 가는 현재에도 단순히 '한때 이름 날리던 여자 골프 선수'에 그치지 않고 세계 골프계에 그 존재를 확실하게 이어가고 있는 이유는 그녀가 그 숭고한 신념과 아름다운 마음을 잘 간직해 오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 ·문화적인 배경으로 인해 공동체에 대한 헌신과 소속감이 다소 약하고 복잡하게 꼬여있는 멕시코 사회에서 오초아와 같은 깊은 울림과 감동을 주는 인물은 좀처럼 찾아보기 드물다. 그래서 필드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세계적인 선수가 아닌 세 아이의 엄마로, 자선 사업가로 두문불출하며 조용히 지내고 있어도 오초아의 현재가 더 빛나고 아름답다.